"미국 중심 AI시대 30년 간다…이후엔 양자컴퓨터 차례 될 것"

입력 2023-11-26 18:09   수정 2023-11-27 00:03


백일승 더하기북스 대표는 정보기술(IT)업계에 한 획을 그은 벤처 1세대로 꼽힌다. IBM에서 17년간 프로그래밍 및 솔루션 사업 업무를 맡았던 그는 소프트웨어업체 제이씨엔터테인먼트(현 조이시티)를 창업했다. 2000년부터 13년간 이 기업을 이끌며 길거리 농구를 소재로 한 PC 온라인 게임 ‘프리스타일’을 흥행시켰다. 후속으로 내놓은 모바일 게임 ‘룰더스카이’는 국산 게임 최초로 미국 앱스토어 모험 게임 부문에서 1위에 오르는 성과도 냈다.

백 대표는 2012년 건강 악화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공동 창업자인 부인과 함께 보유하고 있던 제이씨엔터테인먼트 지분 총 896억원어치는 넥슨코리아에 매각했다. 지금은 산업 현장에 30년간 몸담은 경험을 살려 IT업계 종사자를 위한 ‘진로 조언가’로 활약 중이다.

대학생이던 김정주 넥슨 창업자,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의기투합했던 백 대표는 지금의 국내 IT업계를 “노쇠해졌다”고 진단했다. 해외 빅테크(대형 기술 기업)들의 생성형 인공지능(AI) 공세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한 번 더 혁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업계 일선에서 물러난 뒤 11년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게임 시장이 커졌지만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국산 게임이 2020년대 들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업계에 새로운 시장이나 장르를 개척하려는 벤처 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엔씨소프트, 한게임 등이 활약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가장 달라진 점입니다.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려는 게임사들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내수 시장이 커지면서 국내에서 1·2등만 해도 안정적인 매출을 낼 수 있게 된 결과입니다.”

▷벤처 정신을 되살릴 수 있을까요.

“기존 게임사 내에 스튜디오를 다수 운영하는 방식으론 이미 노쇠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기가 어렵습니다. 개발자들이 벤처 게임사를 차린 뒤 이곳에 대형 게임사들이 투자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벤처기업들이 충분히 있어야 대형 게임사도 활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IT업계에선 생성 AI가 최대 화두입니다.

“미국 중심의 AI 시대가 앞으로 30년간 유지될 겁니다. 이 질서가 바뀌려면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는 시점까지는 가야 할 겁니다. 빅테크와의 생성 AI 개발 경쟁에서 삼성전자와 같은 곳이 아니라면 한국 기업이 승리하기란 어렵습니다. 전기료로만 수천억원을 쓰는 빅테크와는 투입할 수 있는 자본 규모가 상대가 안 되니까요.”

▷한국 기업은 어디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요.

“빅테크들이 내놓은 AI 기술을 활용해 양질의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만드는 게 살길입니다. 대규모언어모델(LLM)을 만들 인력보다는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IT산업은 응용의 시대입니다. 과거엔 컴퓨터공학 기술에 능숙한 이들이 창업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기본적인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는 인재가 이미 나와 있는 AI 기술을 응용하면 창업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교육 현장에선 창업 열풍보다 의대 진학 열기가 뜨겁습니다.

“의사를 지망하는 이들의 뜻을 꺾을 순 없습니다. 인재가 몰린 산업을 키우는 것도 방법입니다. 한국을 전 세계에서 수술하러 오는 의료 강국으로 만들면 됩니다. 의대와 개발 역량을 결합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의대에서 1년 정도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을 필수 과목으로 넣으면 어떨까요. 의사들이 소프트웨어를 접목해 신약 개발에 활용하거나 창업에 나서는 데 물꼬를 틔워줄 수 있을 겁니다.”

▷지난해 개발자를 앞다퉈 모셔갔던 판교의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일부 기업에서 개발자를 감원하거나 희망퇴직을 받는 상황입니다.

“업황이 나빠진 게 오히려 기회입니다. 대기업에서 쫓겨난 개발자는 창업을 생각하기 마련이니까요. 휴대폰 시장을 잡고 있던 노키아가 꺾인 뒤 핀란드는 오히려 벤처 창업자들의 천국이 됐습니다. 절벽에 몰린 노키아 개발자들이 창업에 나서면서 결과적으로 여러 스타트업이 커질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네이버, 카카오의 뒤를 이을 IT 대기업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가 원인이라고 봅니다. 중소기업에 있는 개발자가 성장하면 더 좋은 보수를 기대할 수 있는 대기업으로 빠져나가기 마련입니다. 좋은 인력을 대기업이 독점하게 되는 상황이죠. 이 문제는 정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심스럽게 풀 수밖에 없습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노릴 만한 시장은 어디가 있을까요.

“시니어 시장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고령층이 늘면서 새로운 IT 서비스를 쓰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도 늘고 있습니다. 고령자는 앱으로 식당을 예약하거나 택시를 부르기도 쉽지 않아요. 이들이 IT를 이용할 때 느끼는 불편함에서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방’도 눈여겨볼 키워드입니다. 미국에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LA) 등 대도시의 거주지로서 인기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디지털 사회에서 굳이 사무실에 출근해 일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쾌적한 교외로 인력이 이동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에서도 상사와 얼굴을 맞대는 사무실보다는 쾌적한 지방에서 일하려는 이들이 많아질 겁니다.”

▷후배 IT 기업인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IT 기업이든 관계 부처이든 외부 인사를 바탕으로 한 고문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합니다. 내부 인사는 최고경영자(CEO)의 눈치를 보느라 입바른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안에서 잘한다고만 하면 ‘아이디어 자폐증’에 빠지기 쉽습니다. 외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의사 결정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카카오도 외부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지를 다양한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고문단 체계가 구축돼 있었다면 좋았을 겁니다.

▷발상법을 주제로 <아이디어 1퍼센트의 법칙>이라는 책을 펴낸 것도 후배 기업인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목적인가요.

“사업 성공을 위해 아이디어 발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피터 틸은 자신의 저서 <제로 투 원>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시장을 독점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에요. 어떻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기업 경영과 창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어떻게 떠올릴 수 있는지를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넥슨·엔씨·라이엇…게임사, 빅테크가 만든 AI 앞다퉈 도입
빅테크(대형 기술 기업)가 내놓은 인공지능(AI) 기술을 적극 활용하라는 백일승 더하기북스 대표의 제언이 게임업계에선 현실이 됐다. 엔씨소프트, 라이엇게임즈 등 주요 게임사는 AI 기반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빅테크와 적극 협력하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자체 개발한 대규모언어모델(LLM)인 ‘바르코’를 게임 콘텐츠 개발에 적용할 준비를 최근 마쳤다. 텍스트, 이미지 등을 AI로 제작하는 서비스를 사내에서 시험하고 있는 단계다. 다음달 7일 출시하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쓰론앤리버티’에도 AI를 활용한 자동 번역 기술을 적용하기로 했다. 내년 7월께 게임 콘텐츠 제작용 AI 서비스를 외부에 공개하는 게 목표다.

엔씨소프트는 게임 개발에 생성형 AI를 활용하기 위해 빅테크 두 곳과 손잡았다. 바르코를 개발하기 위해 올 1분기 구글의 딥러닝용 하드웨어(TPU)를 도입했다. 지난 8월 바르코를 공개했을 땐 아마존웹서비스(AWS)의 머신러닝 오픈소스 플랫폼인 ‘세이지메이커’를 유통망으로 활용했다. 업계 관계자는 “엔씨소프트는 구글, AWS 등의 개발 지원 서비스를 적시에 활용해 AI 기반 콘텐츠 제작 환경을 빠르게 구축했다”며 “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게임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의 개발사인 라이엇게임즈도 AWS와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라이엇게임즈는 지난해 7월 모든 게임 관련 서비스에 AWS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적용했다. 지난 19일 한국팀 T1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2023 LoL 월드 챔피언십’의 중계에서 선보인 승리 확률 모델도 AWS의 세이지메이커를 이용해 개발했다.

넥슨은 연내 출시할 계획인 슈팅 게임 ‘더파이널스’에 생서 AI로 만든 음성을 도입했다. 하이브 자회사인 수퍼톤은 16~19일 열린 게임 행사인 ‘지스타 2023’에서 AI 음성 제작 플랫폼인 ‘스크린플레이’를 선보였다.

■ 백일승 대표는

△1955년 부산 출생
△부산 경남고 졸업
△1979년 서울대 조선공학과 졸업
△1981년 대우조선해양 입사
△1982~2000년 한국IBM 엔지니어링솔루션사업부 본부장
△2000~2012년 제이씨엔터테인먼트 사장
△2014년~ 더하기북스 대표이사


이주현/정희원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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